어제 12시 가 조금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 깨는 시간은 다음날 해야 할 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지, 어제 잠든 시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아침이다.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맞추어 놓은 TV 가 자동으로 켜 지고, 한 시간인가 지나면 꺼져버리는 아침이다. 어제 밖엘 조금 돌아다니고, 당구를 치는데 꽤나 힘을 들여서 아침의 내 몸엔 땀이 베어 있었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노래를 틀었다. 아무도 없는 아침은 이래서 좋다. 아무리 샤워를 오래 하고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도 누구 하나 화내지 않는다.
잠시 물을 받다가, 오랜만에 욕조에 들어가서 좀 누워 있고 싶어졌다. 욕조에 누워서 여유를 즐긴 것은 1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운 마음에 욕조에 물이 채 다 채워지기도 전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 사소한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물이 좋다. 물이 점점 차 올라 내 몸과 수면의 높이가 같아 졌다. 나는 수면으로 떠오르는 걸까, 아니면 가라앉고 있는 걸까.
난 수영을 못한다. 어렸을 때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이젠 기억이 안나는 어떤 이유로 못하게 되어서 아직도 난 내가 바다에 뜰 수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하늘을 나는 상상은 해도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바다는 두려운 곳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배를 타는 것이 나에겐 더 두렵다. 하지만 바다를 거니는 것은 좋아한다. 내 발목을 적시는 푸른 물이 좋다. 발목에 느껴지는 물의 감촉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욕조에서 느꼈던 것과 같다.
그리곤 컴퓨터와 약간 씨름 하다가 악마의 시를 읽었는데 문체가 좀 어려워서 40분을 채 못읽고 잠이 들었다. 창문을 열고 잠이 들어서 그런지 일어 났을 때 더러운 기분은 남지 않아 좋았다. 여름 바람이 이렇게 시원했던가… 기분 좋다. 한동안 계속 누워서 바람을 쐬었다. 거실에는 실링 팬이 돌아가서 여름인지 모를 정도로 시원했다. 4학년 때 휴학을 잠깐 하고 혼자 살아 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이런 sweet home 을 떠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워 졌다.
요즘 일기를 쓰면 결론이 안나는 것 같다. 다만 내 느낌과 기억의 편린이랄까? 언제부터 오늘 하루의 결론을 내고 그것을 정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를 며칠간이나 괴롭혔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며칠 간의 고민 끝의 내 결론: “내 인생이 하루 단위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비참한가.” 인생은 긴 여정이니까, 이렇게 생각해 두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리라. 며칠에 한번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자.
PS: 그림은 ‘그남자와 그여자의 사정’ 중에서… 그런데 난 이 애니메이션 거의 못 봐서 무슨 내용인지 잘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