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이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은지 24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머리를 흔들면 아프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나에게 술이란 귀찮은, 피할 수 없을 때만 마시는 그런 존재였다. 술에 이렇게 어색해 져 가면서 나는 외로움을 배웠고, 이제 그들이 다시 다가옴을 서서히 느낀다.
저녁에서는 성호가 약속대로 우리 학교에 음대 도서관에서 악보(우리나라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아 주문하는데 $45가 드는)를 복사할 것이 있어서 놀러 왔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면서 성호가 내 학생증으로 도서관에 들어가서 악보를 복사할 때 밖에서 기다렸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간간히 끼어드는 정적 속에 묻어 나오는 가녀린 이름모를 바이올린첼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왠지 심금을 울릴만 한 것이었다. 바라보며 깎여내려진 어색한 산의 구릉밖에 보이지앉는 방충망이 달린 창문을 초점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성호가 영화를 보여 주기로 했는데, 마침 보고 싶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볼까 했었다. 그렇지만 가는 길에 신촌 문화 축제를 구경하러 길을 새서 그 곳에 눌러 앉아서 공연이 끝날 때 까지 관람하게 되었다. 거리는 상당히 활기찬 분위기였고, 도로도 꽤나 탁 트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평소의 신촌에서 느껴지던 답답하거나,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신기했다.
첫번째 공연에는 한국 전통 타악기 밴드 두드락(?)이 나왔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약간 개조한 국악기로 타악기만으로 상당한 퀄리티와 재미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워낙 템포가 빨라서 체력의 한계가 있는지 네 곡 정도를 하고 그들의 무대는 끝이 났다.
그 다음에는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었다. 별 기대도 않고 앉아 있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어서 좋았다. 주위에는 그들의 팬이 꽤 있는지 공연 중에 소리지르는 사람도 많았다. 대학 아마추어 밴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부 모르는 노래 투성이라서 따라부르지를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다 아는지, 아무래도 팬클럽에서 단체 관람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끝나고 성호가 내 펌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해서 펌프를 두판 뛰고 같은 버스를 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왔다.
내일도 모레도 축제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다 봐 봐야 겠다. 길가에서 살도 좀 태우면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누구랑 같이 보면 좋으려나.
월요일 밤에 두 시간동안 뚝딱해서 쓴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가 수업시간에 잘 한 레포트 중에 끼어서 소개됐다. 여기서 소개 되면 A 란 뜻인데, 조금 무성의하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라 기쁘다. 교수님은 베낀거 아니냐고 – 좋은 뜻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 물어보기까지 하셨다. 나름대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나간 것이 도움이 되었고, 특히 내가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일기를 쓰면서부터 꽤나 향상된 것 같다.
요즘은 벽에 대한 생각에 자주 빠진다. 벽이란 무엇일까. 너와 내가 이야기하면서 묘한 벽을 느낄 때, 나는 너를 과연 얼마나 더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휩싸인다. 애시당초 우리의 종의 씨앗(예를 들면 벽에 달린 창의 유무, 있다면 크기)이 달라서, 그래서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충돌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친한 친구, 연인 사이에도 벽은 있는 걸까? 우린 벽과 함께 그것을 껴안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일까?
우리가 느끼는 벽에 대한 관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저 사람과 나 사이엔 벽이 있는 것 같아. 우린 친해질 수 없는지도 몰라. 그녀석과 난 아무리 이야기해도 뭔가 이질감이 느껴져. 난 그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 그사람은 날 좋아할 거 같지 않은걸, 우린 다르니까. 심지어는, 내 마음속엔 벽이 있는 것 같아, 낮추거나 열기 힘든. 이런 말들로 벽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나는, 우리는 안돼! 하고 먼저 마음을 닫아버린다.
나를 아는 자들이여, 나에게 벽이 보인다면 가차없이 그것을 부수고, 자신에게 벽이 보인다면, 우리 함께 그 벽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그래서 그것이 우리를 막을 수 없을을 증명해 보이자.
PS: 사진은 베를린 장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