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낳은 시작

어제 많이 피곤했는지 오늘도 피곤함이 가시지를 않아서 아침부터 공부가 잘 되지를 않았다. 그렇지만 3시에 시험이고 아직 제대로 시험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공부할 내용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고, 그저 약간 지루할 뿐이었던 것 같다. 한시간 쯤 공부하고, 10~20 분 쉬기를 반복해서 간신히 진도를 다 나갔을 때는 시험 시간까지 4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40분간 한숨 돌리며 쉬었다. 남들은 열심히 공부할 때 나는 쉰다. 시험이 코앞에 다가올 때 까지 절박하게 공부를 한다는 것이 나에겐 어색하다. 시험 보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어야 무언가 깔끔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시험이 시작되면 가능한한 빠르고, 내 생각대로 답을 차례로 적고 나오는 편이다. 쓰다가 틀리면 찍찍 긋고 계속 쓰는가 하면, 너무 뜯어 고쳐서 수정액까지 동원될 때도 있다. 무성의하다면 무성의하고, 자유스럽다면 자유스러운 내 답안지는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시험 문제는 평이한 난이도였지만 암기가 덜 되어서 몇가지 서술을 빼먹고, 도표그리는 문제와 코드 쓰는 문제 하나씩을 못 썼다. 사실 도표나 코드는 생각하면 충분히 쓸 수 있었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정확히 모르는 것을 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매달리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아는 것만 쓰고 나왔다. 시험이 끝나고는 재헌이와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다만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이유 만으로 문제를 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는 내가 일부러 하고 싶지 않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내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조차도 포기해 버린다고 나를 비난했다.

남들은 시험을 보면 110% 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애쓰지만, 나는 80%의 능력만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남들만큼 노력하면 나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자만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정말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더 잘 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나는 너무 일찍 포기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은 이제 지나갔지만, 내 앞에 주어진 이 현실은 절대 포기하기 말기로 하자…

어쨋든 시험은 끝나버렸고, 나에겐 휑한 방학만이 남겨졌다. 지금은 텅 빈 2 개월을 나는 수많은 만남과 열정으로 채우리라. 만남으로 부터 얻은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스쳐 준 숨결과 눈빛을 간직하리라. 내 자신에게 더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