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쉬는날을 맞았다. 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정훈이랑 디아블로 2 확장팩에서 최종보스를 죽이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는 잠이 들었다가 피곤하게 깨어났다.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하기가 싫어서 ‘서극의 순류 역류’를 봤다. 꽤나 인상적이었고, 여전히 공부가 싫어서 ‘패스워드’를 보다가 컴퓨터가 다운되서 포기했다. 오늘은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Java & XML 을 읽었다. 훌륭한 번역과 원문의 아름다움이 만나서 너무나 잘 정리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이라면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것 같다고 좋아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책을 들추는 것 조차 어색해진 오후다. 두려움, 막연한 것이 나를 짓누른다.
삶은 안정과 불안정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커 지면 문제가 생긴다. 사실 우리는 그 경계를 매일 매일 넘나들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안정되어 있다 싶을 때면 무언가 불안정해지고 싶은 욕구를 갖고, 불안정할 때는 그 반대를 원한다. 나는 그 경계선에서 한발 짝 정도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내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생에는 아쉽게도 – 또는 다행스럽게도 – 심판이 없다.
‘서극의 순류 역류’. 꽤 볼만한 영화였다. 액션과 멜로(?)를 알맞게 버무려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 사랑에 대한 … 희망이랄까. 비단 사랑 뿐만은 아닐 테지.
보람누나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던 기억이 난다. “지적인 여성”. 좋지 지적인 여성. 하지만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는 나의 애정적 갈증의 해소가 지금의 내 삶에서는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한때 누구라도 좋아! 라고 생각했던 나날들. 세월은 돌고 돈다. 계절은 바뀌지 않았지만 세월은 흐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