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다 만 인트리모크랩 피자 한 조각 먹고 학교에 가서 데자와를 한 캔 마셔서 몸을 녹인 뒤 우체국에서 재헌이 소포 붙이는 것 기다리다가 재헌이와 당구를 쳤다. 음 역시 김재헌 당구를 너무 잘쳐!!! 밤새고도 다이기다니 ㅡ.ㅡ; 여튼 실제 게임은 두 판만 치고 그 뒤론 연습구만 엄청 쳐서 돈은 6000원 밖에 안나왔는데 당구는 두 시간 넘게 친 탓에 네 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재헌이 배웅 하고 학교 가서 스캐너 산다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약속 잡았다. 그리곤 빈둥대다간 집에 도착한 뒤 심심해서 필름 스캔하고 놀다가는 시켄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뭐랄까, 그녀가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기에, 나도 그냥 이런 저런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녀에게 말을 하고 나니, 나의 미래는 왜 이렇게 불확실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모르겠지만, 무언가 나의 그것은 계획이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계획 대로 된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또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이 그렇게 무계획하게 흐른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여, 가고 싶은 대학의 원하는 학부에 왔으니까, 그 일부분은 생각대로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건 그 보다 높은 차원은 ‘그 무엇’인 것 같다. 사람들은 이걸 자아 실현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자아 실현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는 정말인지 힘든 듯 하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못하여, 나에게 돈, 명예, 사랑, 배우자 등 인생의 복잡한 요소들의 설정을 요구한다. 아마 누구도 이 요소들이 운명에 휩싸여 제멋대로 – 정말 말 그대로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달리 – 흘러간다면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지켜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불가피한 인생의 한 국면에서 나는 불안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 수록 나는 의도적으로 안정적이고 싶어 한다. 이세상에서 불안정성이 제공하는 흥미와 안정성이 제공하는 유구한 아름다움… 나는 요즘 지극히 심미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뭔가 일이 터져서 자신을 신나게 해 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에 빠져 살아가는 나.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가보다. 더이상 지킬 것이 없는 자도 불쌍하지만, 지킬 것이 너무 많아 우물쭈물하는 자도 불쌍하다. (무슨 바카스 선전 같군. 지킬건 지킨다?) 세상에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딱 하나였으면 좋겠다. 만약 그것이 사랑이었으면 좀 더 좋겠다. 한편으로는 나의 일들이었으면 좋겠다.
난 결국 이 긴 몇 문단으로도 나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결국 나는 복잡하며 단순하고, 미묘하며 밋밋하고, 열정적이며 귀차니스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