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찍일어났음에도 별 일 없이 한낮까지 기억도 안나는 시간을 흘려 보내며, 마쯔 타카코의 ‘넘쳐 나는 시간 속에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기도 한’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젠장’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구부러진 노는 펴지지 않는 걸까.
중고 직거래로 28mm f2.8 렌즈를 샀다. 17만원이라는 싼 가격에 90% 수준의 아주 좋은 물건을 사서 만족스럽다. 버스타고 가는 길에 책도 조금 읽고 해서 ‘무언가’를 오늘도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새 렌즈를 산 기념으로 후배도 몇 장 찍어 주고, 광각으로 신촌 거리도 찍어 보고.
비정상인 듯 하면서도 정상인 세상, 그것은 이 렌즈로 바라본 그것과 일치했다. 묘한 기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만을 바라보며 정상적인 세상을 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는 것이 진짜 우리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일과 모레 사진을 찍고, 31일 할아버지 제사를 다녀오면 한 해가 끝난다. 솔직히 제사는 싫다. 이 집안에서, 그러니까 큰아버지 댁에는 아들이 없기 때문에 장남인 나지만 제사는 왜 하는 걸까, 아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 해 줄 그 어떤 무엇도 나에게는 명료하며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무언가 불완전하게 – 또한 그것이 완전하다 하더라도 다를 것이 없다 – 벌초된 묘의 작은 언덕을 바라 볼 때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렸을 적 헌 책방을 하시던 친척 할머니를 처음 뵌 뒤 몇 달 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의 묘한 죽음에의 두려움과 이 세상(또는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멍멍이인 재롱이의 수명에 대한 걱정만이 내가 아는 죽음의 전부이다.
어제 새벽에는 아즈 후배와 메신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땐, 뭐랄까 일종의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에 압도되어 몇 번이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와 약간의 대화도 해 보고 너무나 선하고 – 어찌 보면 조금은 어리숙한 – 담백한 목소리에 기분 좋은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메신저를 이용한 대화는 그 목소리의 느낌은 없지만 목소리에 대한 무한한 확장을 가능하게 해 주기에, 내 머릿속 그녀의 모습을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해 주었고, 그녀의 말에 진실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만남과 헤어짐, 그 안의 작은 불안을 우리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서로를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마음껏 되지 않는 현실에게 증오를 보일 수는 없기에, 우리 존재의 의미를 끝까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씨앗에 한껏 끌어모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