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쓴 에세이입니다.
그녀가 내게 와서 말했다.
“넌 어째서 조용히 있니? 무슨 말을 좀 해 보렴.” “할 말이 없는 걸 어떻게 해.”
그리고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대하여.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얼마만큼의 것이며 내가 지키는 침묵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사실 나로써는 잘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이 더 높은 가치와 좋은 기분을 주는지에 대해서 나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와 그 점에 있어서 그렇게 다르지 않다. 마음속으로는 만나고 있는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열린 대화를 갈구하지만, 실제로 그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나 자신의 조용한 분위기는 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원할 때 편지를 쓰기도 했으며, 힘을 들여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했고, 싫지만 큰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이고, 그러므로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편이다. 그것은 만난 사람이 좋건 싫건 관계가 없다. 어쩌면 내 인생의 짧았던 그 겨울은 겨울도 아닌 어떤 계절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널 사랑해” 라는 이 한마디보다 그저 종종 만나 함께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곤 하다가 헤어져서 며칠 만에 안부를 묻는다. “사귀게 된다”는 것이 지니는 그 엄청난 제약과 함께 있을 시간의 무게에 나는 지레 겁을 먹는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사랑, 아름다움 따위에 대한 막연한 동경까지. 나에게 사랑이란 미래와도 같은 끊임없는 의심과 기대의 반복이었고, 또 지금도 그렇다. 가끔은 내가 진정으로 그것을 갈망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에 대해 내가 환경적으로 갈망하게 되어진 것인지, 나 자신이 본질적으로 바뀐 것인지 묻는다면 그 답은 명확하다.
이렇게 나 자신에게는 바뀔 수 없는 중요한 나만의 특성 – 내면 – 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항상 변신을 시도해 왔다. 어딘가 지금의 나로는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한겨울의 거리에서 크게 한숨을 내쉴 때의 짙은 연기가 지나간 자리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 왔던 것 같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그 연기가 끝까지 남아서 나를 대변해 주었으면 할 때가 있는데, 결국 그들은 야속하게 나를 버리고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길을 거닐 때면 꼭 한 번 씩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곤 한다. 그러다가는 그것이 주는 공허가 있다면 또한 그것이 주는 사라짐의 아름다움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변신이란 이렇게 서글픈 것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