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학교에 갔다. 컴퓨터실에는 02학번들 뿐이었다. 나 혼자 밥사주기도 뭐하고 그냥 앉아서 사토루에게의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내 자신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 편지를 보낸다는 게 너무 싫어서 다시 좀 더 정성을 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랬다.
편지를 쓰고는 학교 우체국에 가서 3년 만에 편지 라는 것은 부쳐 보았다. 그 생소한 느낌이 조금은 상쾌하고 좋았다. 일본인들과 펜팔을 했던 고교 시절도 떠오르고…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정말 사랑해 마지 않을 그 사람들이 보고 싶은데, 난 이제 그들에게 용기내어 편지를 쓸 힘 조차 없는 걸까. 가슴이 아프고 지금 당장 달려가 인사하고 싶다. 너를 보기 위해 지금껏 살아 왔다고.
혼자서 영화를 볼까 하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신촌 신나라 레코드에서 음반 구경을 했다. JEWEL 의 새 앨범이 눈에 띈다. 재헌이에게 부탁해서 주문을 했는데 내일 쯤이면 내 손에 들어올 음반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지갑을 꺼냈다가는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이 세상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진심으로 내 모든 것을 기꺼이 다 바칠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나 자신에의 사랑이 지나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나 자신은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그래서 결국 조금은 남들과 단절된 생활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런 생활이 좋게 느껴질 때가 참 많다. 무언가에 그냥 홀로 빠져서 익명성에 기대듯 거리를 거닐고, 누군가의 눈길 하나 신경쓰지 않고 식당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 버리고, 마음이 내킨다면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감동도 해 보고… 아니, 이런 행동들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들인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남들을 찾는 빈도가 더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나만의 세상이란 것은 내 마음 속 이외의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그것을 내 밖으로, 이 넓은 세상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말이 없는 나지만, 몸속 숨겨진 색깔로 이 거리를 칠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