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문턱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누 조각이 따뜻한 물에 녹아내리듯 어느 사이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일까. 심신의 피로, 여러 일에 신경써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빠르게만 흐르는 20대의 시간은 나를 한 없이 오그라뜨린다. 작아진 내 자신은 어느새 컴퓨터 화면의 픽셀처럼 스스로는 어떤 의미도 표현하지 못할 그런 나약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해할 수 없는 피로 속에 잠을 청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무의미한 일상의 무게는 이토록 무겁다.

마음 깊은 곳의 이름 모를 슬픔과 허전함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다만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에는 조금 달라졌으면 한다. 나를 어렵게 하는 이 모든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통쾌하게 남김 없이 부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