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렌즈를 한 번 착용해 볼까 하다가, 야맹증을 조사해 보다가, 망막 변성을 조사하고, 그러다가 RP (Retinitis Pigmentosa, 망막색소변성)라는 질환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망막 변성에 의한 야맹증으로 군 면제를 받았기에, 혹시나 이 질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 요 며칠 사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덕택에 눈도 매우 피로해지고, 일도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주 초에는 한동안 열심히 일한 것을 자축하며 일을 하지 않고 오랜 만에 좋아하는 ‘테트리스’ 에 손을 대는 바람에 지난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찌 하였든, 오늘 병원 검사 결과 RP 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한편으로는 지난 며칠간 내가 바로 그 3000명 중 1명 꼴로 발명하는 RP 환자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막한 심정을 돌이켜 보게 된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내가 앞을 볼 수 없게 된 뒤에도 나는 유명한 해커 영화에서처럼 멋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을까? 어떤 유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도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밤도 누군가 24시간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정이 초과된 프로젝트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 중 어느 누군가는 오늘 밤 가족을 그리며 떨리는 손으로 목을 맬 수도 있고, 찜질방의 수면실에서 원치 않게 심장이 멎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이제 막 시작해 얼마 안가 끝나버릴 한 주, 다시 태어난 소중한 몸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