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들

밤이 깊었다. 오래 전 사진에서 느껴지는 조금씩 늙어 가는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실감케 한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나의 머리는 가끔씩 무엇을 해야 할 지 쉽게 잊고 만다. 이런 상황을 맞딱뜨리고 있자면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한다.

불안.

불안 장애로 신경 정신과 치료를 받아 온 지도 6개월이 넘었다. 치료를 받기 전 몇 달 간은 장염, 망막 열공, 이명 등으로 인해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일들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타협의 방법들을 배워가고 있다. 치료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악화되지도 않으니 지금 이 상태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초조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 전진해야 한다는 강박과 의지 사이에 위치한 미묘한 무언가가 나를 그 곳으로 몰고 간다. 극도의 집중력과 자제력을 잃기 직전까지 감내할 수 있는 참을성에는 다 이런 댓가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그런데 이런 복잡할 뿐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 생각들을 잠재우는 새로운 친구가 하나 생겼는데, 바로 지난 2월 9일에 태어난 내 딸 채은이다. 채은이를 바라본다고 해서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성격의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자주 생각나는 것은 ‘아기’라는 존재의 위대함이다. 아기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앞으로 될 무언인가에 대한 가능성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만들어져가는 존재, 그 존재의 시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미 늙어버린 내가 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존재란 그렇게 경이롭다.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아빠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스럽다.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나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다른 과거의 많은 아빠들처럼 실수를 거듭하며 한 사람의 아빠가 되어 가지 않을까? 항상 그렇지만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즐거운 무엇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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