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을 꿈꾸며

Pizzicato Five – Happy Sad

부모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식사를 제때 챙겨먹어야 한다고. 수백번을 들어온 그 말들을 들으면 이젠 화가 난다. 속이 아파서 내일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는 말에 ‘그러길래 일찍일찍 들어오고 그랬어야지’ 하는 투의 말들에 대한 나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우리는 말다툼을 했고 그것은 언제나처럼 내가 철이 덜 들었고 부족한게 없이 자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불 쾌하게 끝났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가족과 함께 한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나의 지혜로운 연인은 조언했다. 부모님들은 기성세대로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나를 돕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다.

하지만 …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문제일까.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고 말하는 것이 싫다. 나를 어린 아이로 보는 것이 정말 싫다. 나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아 주지 않을 때마다 부모님의 애정은 나에겐 스트레스이며 마음에서부터 몸까지 집을 떠나버리게 만든다. 내가 정말로 피곤하고 힘든 것은 회사 일 때문도 아니고 집이 멀어서도 아니다.

가족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만 하면 끊임없이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 시작한 다. 자격증은 빨리 따야 하고, 일본어 학원은 왜 계속 안다니는지, 제발 집에 일찍좀 들어오라는 말들. 세상에 해야 할 일은 많다.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일들이다. 나도 일본어 공부를 매일같이 하고 자격증을 5개 정도는 갖고 있으면 좋겠다. 일찍 집에 들어와서 매일 숙면을 취하고도 싶다. 하지만 나는 다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 중에서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그 권리가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집을 떠나는 것은 나의 숙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진짜 내가 만들어낸 시공을.

아니, 당장이라도 짐을 싸기 시작해야 겠다.

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Davi – Let’s Fall in Love

연휴도 어느덧 반이 지났다. 잠도 충분히 잤고 방정리도 그 어느 때보다 깔끔하게 마쳤다. 잊고 싶은 기억은 휴지통으로 떠나보내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이리 저리 고심해서 정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내가 지금 소중히 여기고 있는 기억도 어느 날엔가 는 그렇게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누구나가 새해가 되면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한숨을 내쉰다. 세상엔 변하는게 참 많다고.

서랍 속에서 발견한 액자도 그랬다. 조용히 액자를 풀어 사진을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고는 액자를 깨끗이 닦아 책상에 눕혀 놓았다. 액자도 함께 버릴 걸 그랬다. 원하는 디자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른 녀석인데. 내일 아침엔 멀쩡한 액자를 왜 버리냐는 가족들의 만류를 듣지 않을 시간에 몰래 액자도 실종시켜야 겠다. 세상엔 변하는 게 참 많구나.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이 세상은 오죽할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심지어는 자연마저도 우리와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친구가 말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나 다툼 따위가 아니라 바로 ‘사랑했었다’라고.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어떤 것은 과거가 되고 어떤 것은 현재에 살아남아 계속된다. 마치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이 있던 자리를 지워버리듯 변하지 않기를 바라던 것이 변해버 리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혼란 속에서, 내게 주어진 지금이 과거형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내 전부를 던질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사랑 안에 있으므로.

PS:

이 보잘것 없는 일기를 쓰는데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네요.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거에요.

지금 내 곁의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싶고 지금 내 앞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열중하고 나면 잊어버려야 할 추억도 그 열기에 녹아서 남아 있지가 않게 되어버린다는 표현이 저에게는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목소리로 쓰는 편지

My Little Lover – DESTINY

벌써 새해 첫 달의 2/3가 흘렀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그만 놓치고 지나간 일이 있으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스럽다. 내 ‘할 일 목록’ 표에서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린 많은 일들을 기억하기엔 나에게 할 일이 너무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달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지난 한 달간 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이야기들도 털어 놓고 앞으로의 계획도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편안히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편지를 완전히 편안하게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편지라는 것이 가지는 전달력을 알게 된 뒤로부터는 말이다. 일본어와 영어로 펜팔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연습장에 편지를 쓰고 이리저리 수정과 편집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편지지에 마지막 결과물을 옮겨적어왔다. 고백의 편지도, 크라스마스 편지도 그랬다.

돌이켜 보면 많은 후회가 남는다. 물론 한 편의 소설처럼 멋드러지게 정리된 편지는 꽤 인상적이지만, 좀 더 자연스럽게 마음이 은은 히 풍겨나는 편지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편지를 많이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즉석에서 써 내려간 편지의 멋을 몰랐었다. 솔직함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마음에 와 닿는 그 사람의 온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월 4일 어린이 대공원, 나는 독특한 시도를 해 보았다. 글로 남기지 않고 목소리로 전하는 편지를 썼다. 한적한 공원 길을 함께 거닐며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지난 번 편지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내 두근거리는 가슴의 진동 하나 하나를 목소리의 울림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은 그렇게 긴장했지만 이내 내 마음은 그녀의 미소는 엉킨 실타래를 풀듯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었다. 오 히려 마음이 자유로웠다. 솔직한 느낌 그대로 모두 전했다.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지고 싶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항상 떠오르는 일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싶다.

새벽의 연애 노트

서영은 – 천사

지금은 새벽 세시 반, 서비스 업계의 기술직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새벽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 다. 지금까지는 테스트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 시스템에 직접 칼을 대는 위험한 짓을 해 왔지만 새로운 부장님이 오신 뒤 로는 많은 상황이 나아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바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번 달은 순식간에 지나버릴 것 같다. 1년의 8.4%의 시간이 순식간에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배출된 느낌이랄까?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사람은 알까?

함께 할 일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에 하나하나 선을 그어 간다. 그 선이 지금 몇 개가 그어져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늘어가는 목록의 길이와 그 위에 덧그려진 선들을 떠올리면 기쁘다. 누구나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이 감정이 나에게만은 너무나 특별하다. 사랑은 역 시 두 사람만의 것이니까.

오랜만에 바뀐 그 사람의 컬러링에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놀랐지만 이내 적응했다. 가사를 염두에 두고 바꾼 걸까? 그랬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두 사람 사이의 편안함은 그 어떤 가사보다도 따뜻하다.

나의 하루를 그릴 때면 그 사람의 하루가 떠오른다. 지금 즈음 잠이 들어 있겠지? 내일은 출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겠지? 그 사람의 하루를 그리는 일은 즐겁고, 내 하루도 함께 즐거운 계획으로 가득찬다. 가끔은 서로의 계획이 교차하기도 하고, 나는 그로부터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것 같은 충만한 애정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다. 성격이 둘 다 모나지 않고 낙천적이어서 싸울 일이 없다. 이렇게 영원히 싸우지 않게 될까? 알 수 없다. 당연히 무엇보다도 싸우고 싶지 않다. 외부와의 싸움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과 친척

Rita Calypso – Kinky Love

나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일까?

“너는 아가씨랑 대화 많이 하냐?” “글쎄, 워낙 가족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럼 말이 없거나 무뚝뚝한건가?” “가족이라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많지 않나? 내가 말하고자 한 건 가족들 사이처럼 어떤 필터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는 뜻이었어.”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님께 꽤나 무뚝뚝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너무나 긴 시간을 같은 집에서 살아 오 면서 얻은 애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조언과 명령의 과잉상태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다 보니 간단히 넘길 조언들도 짜증이 앞설 때가 많다. 모두 좋은 말들인 것은 알지만 나는 그 말은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계속해서 들어 오고 있었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30초 전 에 먹은 반찬을 한 번 먹어 보라고 권유받는 일 까지도… 이렇다 보니 어느새 꽤나 반복을 싫어하는 내 자신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차라리 부모님이 멀어서 쉽게 닿기 힘든 곳에 계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잘 해 나가긴 하겠지만 먼 곳의 부모님이 그립기도 할테고, 좋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전화 한통에 마음이 설레기도 할 듯 싶다.

누나와도 대화가 거의 없었지만 요즘에는 메신저 덕택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좀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누나의 성격은 참 좋아 서 대화를 하다 보면 친근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친척이라던가 하는 개념은 나에게는 정말 익숙하지가 않다. 친인척 관계에 대한 특수한 호칭을 잘 모르는 것은 기본이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목격한 터이라 가급적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항상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를 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지독히도 먼 거리를 달리는지 기는 지 알수도 없는 도로를 따라 행군하기는 더더욱 싫다. 오히려 회사 사람들과 파티를 열면 그것이 더 허물없을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가끔씩 나를 주눅들게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 나름대로의 응대도 하고 형식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날이 올까? 와야 할 필요는 있는 걸까?

춘천 여행 그 일주일 뒤

L’Arc~en~Ciel – winter fall

2003년 12월 28일. 춘천 소양댐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난 일이라니,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겐 분명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지금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의 일부다.

소양댐에서 돈이 없어서, 아니 돈이 없는 줄 알고 유람선을 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는 그랬다. 많이 미안했고 우스운 실 수를 한데 대해서 아쉬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녀의 편안하고 너그러운 마음은 내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대해 주었다. 그녀의 나 에 대한 배려는 진실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었다. 미안한 와중에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경이와 찬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 외에도 기차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실수도 했지만, 덕택에 춘천 조각공원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나름대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해는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바람은 점점 차가운 색을 띄기 시작했지만 행복했다. 불평을 하기보다 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마음에 속으로 감사했다. 벤치에 함께 앉아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았다. 겉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은 따뜻한 물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애정어린 편안함은 아름다움을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꽃처럼, 그렇게 그녀의 깊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전해져 왔다.

PS: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나의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지속되기 힘든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그 날 보냈던 수많 은 순간들의 조각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몸 구석구석에 그들은 붉은 포도주처럼 흐르고 있는데. 그 점이 글을 조금 뒤늦게 쓰다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안다. 그 모든 한 방울 한 방울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라는 내 마음의 기준점을 나침반 처럼 변함없이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연인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

MISIA – 日のあたる場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인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

삼성역에서 퇴근했다. 예상대로 전철역은 완전히 마비되어 그토록 가까웠던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걸릴 시간을 두배로 늘려 놓았다. 전화기는 쉽게 불통이 되었고, 컬러링 서비스는 일시 중지된 듯 진부한 통화연결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그래도 우리는 떨어지는 눈송이가 지면을 채우듯 그렇게 만났다. 자리는 불편했지만 박화요비씨의 공연은 그녀 특유의 순진한 유머와 놀라운 가창력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고,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했던 신촌 거리는 활기차게만 보였다.

카페에서 서로에게 선물을 건네었다. 나는 티폿, 찻잔, 그리고 은은한 향의 얼 그레이를, 그녀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지갑을 선물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채 주어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게 된 적은 바로 1 분 전까지 한 번도 없었다. 지갑을 그녀의 손인양 조심스 레 어루만지며 나의 소지품들을 새 지갑으로 천천히, 의식을 치루듯 옮겨 나아갔다. 그 의식은 나의 모든 과거를 망각의 바다로 조용 히 흘려보내는 의식이었다. 이 모든 의식이 끝나고 나면 단 한 사람, 영원히 갈구하고픈 눈부시게 완벽한 단 하나의 존재만이 내 기억을 지배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첫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서로에게 편지를 건넸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서로의 귓가에 속삭였 다. 나는 그녀의 달콤한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나의 귓가로 스며드는 것을 하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을 감아달라는 음성에 나는 눈을 감았고, 그녀의 입술은 그 어떤 베이커리의 케잌도 흉내낼 수 없을 부드러운 감촉으로 나의 뺨을 사랑했다. 하염없이 그 녀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들을 비웃듯 그들은 알려온다. 지금 너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눈이 내리고 있다고.

미안해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여행

D’Sound – Dancing into the Moonlight

연인이 생긴 뒤부터 글의 주제가 상당히 한정된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그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고 어떻게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었다. ‘나를 나로 있게 하고 싶어서’ 라는 명목으로 그리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아마도 내가 그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하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에 집중한다면 그 때의 내 행동이야말로 내 스스로를 스스로로 있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고 갈무리해두고 싶은 나의 경험과 느낌을 적어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불안해진다. 내가 사랑에 관한 글을 쓰지 않을 때가 바로 나의 사랑이 식어버린 시점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생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

고백하건데, 나는 과거에 실수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내 삶에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사실을. 그 위대함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에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다가는,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불안해져서 내가 돌 보지 않던 나의 능력과 지식을 고백하건데, 나는 과거에 실수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내 삶에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사실을. 그 위대함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에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다가는, 어느 순간 주위를 둘 러보다가는 불안해져서 내가 돌보지 않던 나의 능력과 지식을 고백하건데, 나는 과거에 실수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알고 있 다. 내 삶에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사실을. 그 위대함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에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다가는,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불안해져서 내가 돌보지 않던 나의 능력과 지식을 관리하느라 다시 멀어져갔던 과거를 되풀이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만큼 자기 자신에게도 아주 조금만 헌신할 수 있다면 내가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해야 할 슬픈 시간은 찾아오지 않을테고, 나는 그래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대구에 내려갔다 왔다. 대구에는 처음 가 보았는데, ‘그녀가 살았던 곳에 가 보고 싶다’라는 감상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부모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내려가야 했는데, 4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의 지루함을 줄이는데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황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낮은 해가 그녀의 얼굴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웠고, 잠시 뒤에는 어둠을 달리는 차창을 통해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할로겐광이 그려내는 그녀의 실루엣과 그 속에서 아련히 빛나는 나를 향한 눈동자만이 이 세상을 완성하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저녁 8시가 지나 바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었다.

여행 동안 우리는 거의 줄곧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잡는다는 것, 내 품에 안긴 누군가를 감싸안고 어루만진다는 것… 비단결같은 피부를 천천히 스쳐가는 내 손끝은 말하는 동시에 듣고 싶어한다.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손가에 들려오는 그것을 받아들 이면 두리뭉실했던 감정의 조각들이 어느 순간 한 점에 모여들어 크고 확실한 빛을 낸다. 나는 깨닫고 희열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 고 있음에.

개찰구를 지나며 언제나처럼 말했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바보같이 상대방이 미안해할 일을 하고는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도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모하다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하루 동안의 대구 여행은 나에겐 – 아마도 우리에겐 – 미안해하기엔 너무나 소중했다.

처음 열정 그대로

Gouryella – Tenshi (Radio Version)

보통 사랑을 시작할 때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애쓸 때만큼 열정적인 순간은 그것이 성공한 뒤로는 좀처럼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왜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사귀기 전과 후의 사랑의 정도에 변화가 없으면서 열정에만 변화가 있다는 것이 나에겐 모순으로 보인다.

처음 누군가를 자신의 사랑에 동참시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하고, 생전 뿌리지 않던 향수도 뿌리고, 머리가 헝클어지지는 않았는지 세심히 거울을 들여다 보고, 얼굴이 번들거리지는 않을까 신경도 쓰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려고 애쓴다. 말투도 부드럽게 가다듬고 그 사람의 말 하나하나에 귀기울이고 중요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꼭꼭 채워넣는다. 서로가 사랑에 빠지고 난 뒤 어느 사이 이런 좋은 습관들이 하나둘씩 과거의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끔 피곤하고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날이면 부끄럽다. 비록 그들이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었을지라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었던 이유들을 세속적인 정치인들의 공약처럼 방치하고 싶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 나의 약해진 모습을 여전히 좋아하고 걱정해 주는 연인의 모습에 감사하게 된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아 주고 있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처음의 열정 그대로 그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Port of Notes – Hope and Falsity

토요일 신촌에서 안동 찜닭을, 스타라이트에서 홍차를, 극장에서 올드보이를, 미네르바에서 블루마운틴을, 클럽 에반스에서 빅밴드의 재즈를, 그리고 신촌 지하철역에서 묻혀가는 인파속에 그녀를 보내다. 해보고 싶었던 일들과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어느새 과거형이 되어 내 기억의 한켠을 차지해간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아직도 해야 할 미래형 문장들이 너무나 많기에 기쁘다. 한통화 한통화 쌓여갈 수록 할 일은 많아지고, 그대와 함께라면 예전처럼 주저하거나 하지 않고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잊지 않으 려고 작은 글씨로 메모해 나간다.

집에 돌아와 전화선을 통해 오고 가는 이야기에는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가 있다. 좀 더 서로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길을 걷다 그대에게 보내는 찬사가 사실은 다른 누군가에 게도 언젠가 했었던 것은 집에 돌아와 전화선을 통해 오고 가는 이야기에는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가 있다. 좀 더 서로의 관 계에 대해 명확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길을 걷다 그대에게 보내는 찬사가 사실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언젠가 했었던 것은 집에 돌아와 전화선을 통해 오고 가는 이야기에는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가 있다. 좀 더 서로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길을 걷 다 그대에게 보내는 찬사가 사실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언젠가 했었던 것은 아닌지. 그대가 예전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 나에게 어 떤 느낌이 드는지. 서로에 대한 배려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은 아닌지. 타인에게 비춰진 우리의 나이는 어떤 것인지. 가까이 바라보면 얼굴에 주름이 보이지는 않는지 하는 사소한 걱정까지.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그렇게 느껴 그렇게 말하고 싶어 꺼낸 찬사는 오직 그대를 향한 것이었다고,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익숙해진 그 사람을 내심 크게 질투하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 그 이상으로 그대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고, 한 번 만났다가 영원히 멀 어져가는 교차점이 되기보다는 너무나 가까워서 닿은 것과 다름 아닌 평행선이 되고 싶다고, 나이 생각이 들 때면 누구보다도 능력있 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세월이 가져온 그대의 작은 주름들은 끊임없이 키스하고 싶을만큼 아름답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아 주고 그 모습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