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 Committer 겸 Project Leader 가 되다

오늘부로 드디어 ASF의 공식 Committer 가 되었다. 동시에 SEDA 프로젝트의 PL (Project Leader) 까지. ASF 사무소에 ICLA (Individual Contributor License Agreement) 에 사인만 해서 팩스로 보내면 형식적인 절차까지 마무리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가 진행하고 있던 Netty2 프로젝트의 도움이 컸다. Netty2 를 사용하여 Apache Eve 에 Kerberos 기능을 추가한 Enrique Rodriguez 가 Apache Eve 의 프로젝트 리더인 Alex Karasulu 에게 Netty2 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나 자신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Netty2 의 유용함이 결정적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앞으로 Netty2 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Apache SEDA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고, 나는 그것이 최고의 Java 고성능 네트워크 어플 리케이션 프레임워크가 될 것이라 자신한다.

The best is yet to come!

2004년 9월 27일

날씨, 그리움.

오렌지 빛으로 물든 채 미동도 하지 않는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음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깊은 밤 조용히 책상에 앉아 러브레터를 써 내려갈 그런 여유를 마지막으로 가져 본 것이 언제일까?

언젠가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침대에 누워, 창가에 걸친 해질녘의 구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위기 관리 (Risk management)

개발자는 버그를 만든다. 버그는 서비스에 손실을 끼칠 수 있으며, 그것은 금전상의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개발자는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

나의 대답은 ‘No’ 다. 프로젝트를 관리하거나 계약을 진행하는 자는 버그의 발생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을 총 비용에 포함 해야 한다.

또한 바꾸어 생각하면 관리자가 계약 진행자가 일을 잘못 진행하여 개발자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면 관리자는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

문제는 모두가 이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가로 귀결된다. 만약 관리자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고 그 결과 개발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책임을 지게 된다면 이것은 명백한 시스템의 문제다.

잘 가꿔진 팀이라면 누구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단지 프로젝트 진행상의 예측치의 일부에 오차가 발생해 수정 이 필요하게 되는 일상적인 ‘Risk management’ 아닌가?

프로는 패자를 싫어한다

Professional 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암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Professional 은 정직하기를 요구받는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Professional 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것은 능력의 부족해서 일수도 있다. 책임감을 덜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고난 섬세함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7월에 계약을 하고 8월 9일에 검수확인을 받기로 한 프로젝트가 – 8월 9일에 개발 0% 상태에서 가짜 검수 확인서를 작성해 넘기고 최 초의 시스템 배치 및 구성도가 나온 프로젝트가 – 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다음 주 화요일까지 끝내야 하는데, 프로젝트의 일부 를 맡기로 한 사람이 경험이 없어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뒤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그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어쨌든 다른 프로젝트를 연기하면서 이 일을 맡게 되었지만, 매우 불만스럽지 않을 수 없다. 8월 9일이 되도록 아무도 적극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개발자와 개발 PM 들에게 개발 완료일에 대해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며, 예정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알림을 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한 자가 다시 한 번 직장을 얻어 태연스럽게 월급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이 매우 불쾌하다.

무능한데다가 책임감도 없고,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조용히 숨어버리는 그런 부류의 인간에게 관용을 베풀기란 정말 어렵다.

선택은 어려워

누구나 밤이 되면 무언가 끄적이고 싶어지는 걸까? 나도 모르게 블로그를 연다.

요즘 대학원에 가는 것을 생각해 보고 있다. 이 회사에서 개발자로 있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지금 받는 연봉을 다른 회사로 갔을 때 받지 못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제 내 자신을 믿을 수 있 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공부할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깊숙한 곳 까지 숙고하여 단련할 수 있 다면 꽤나 매력적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고민보다도 더 바라는 것은, 내 주위에 부디 나와 힘을 겨루고 경쟁할 수 있는 멋진 파트너다. 서로를 존경할 수 있고 항상 배울 점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아직은 만나지 못했지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록 그들을 하나 둘씩 만나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더 높은 학위는 그런 환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반신 반의지만.

특히나 고민스러운 것은 여자친구와의 일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내가 대학원에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외국에서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도 나에게는 상당히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종국에는 그녀를 잃게 되지는 않 을까? 바보같은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웃음)

우리 앞에 보이는 수 많은 선택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하다.

PS: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지겹다. 다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 이공계의 현실, 앞으로의 대우 등등. 그들이 정말 나의 현실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 보려는 진 정한 열정이 있는 사람의 조언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나의 현실 속에서 이야기해주지 못할 수 있을지언정 따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밤의 사랑 노래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는 계속되고, 남은 열흘의 휴가를 다 쓸 틈도 없이 지나가버릴 것 같은 올해의 기세에 나는 조금 지쳤다.

오랫동안 방치해 둔 이 곳에 다시 글을 쓰려고 하니 조금은 어색하다. 압도적인 피곤에 무엇을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외치고 싶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이름을 외치는 마지막 장면 같은 느낌일까?

가만히 앉아 있으니 기록되지 않은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나를 갈라놓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음직한 여러 가지 고민, 짧은 순간 스쳐간 사람으로부터 떠오르는 상념, 그리고 아무 생각도 없음까지도.

이렇게 나 자신이 정리되지 않을 때 누구나 답답함을 느낀다. 세상 모든 것이 정리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할 때 나의 것을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도 그 모든 일들이 ‘나만의’ 것일 때에나 가능하겠지만.

처녀 비행

Love Psychedelico – Your Song

건강상의 이유로 조금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을 괴롭히던 가벼운 장염은 이제 사라졌고, 십이지장 치료도 곧 끝나지 않 을까 싶다. 한동안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 집에서 가져온 시디를 들으며 다 읽지 못한 근사한 책들을 읽어야 겠다.

건강이 안좋을 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옥타비아누스가 자신이 아그리파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처럼 삶은 생각보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만약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삶을 경 제적으로 살 수 있을텐데, 어떤 면에선 안타깝다.

책을 보며 음악을 좀 더 즐기기 위해 HiFi 기기들을 알아보았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비싼 기기들을 구입했는데, 귀가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하는 걱정도 들고, 한 번 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나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안다면, 나에게 이런 주저는 전혀 없었다. 매달 붓는 적금도 필요 없었다.

어느 노래 가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처녀 비행을 하고 있다. 내일 아침 나에게 불어 올 바람이 어떤 감촉을 가질지… 다만 우리는 날아갈 뿐이다.

후회와 혼란에 관하여

SOUL’d OUT – 1,000,000 Monsters Attack

업무상의 사소한 실수로 지금은 집에서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을 그 시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글 을 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 방금 말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이니까, 업무상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

텅 빈 것으로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의 하룻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꿈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머리맡에 놓아 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마지막 권을 읽어 내려갔다. 이 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 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과 같았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소설가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의 앞날을 알게 되는 것 조차도 사실은 소설가의 계 획에서 비롯한 것임을 주인공은 모른다. 그들의 현명함도 무지도,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계 안의 그들에게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세상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을 뻔히 알면서 멍청스레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의외로 좋은 일도 생긴다. 그것은 4륜 구동차의 덜컹거리는 뒷칸에 앉아 거꾸로 멀어져가는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볼 때의 느낌처럼 이미 과거라 불리우는 시간 속에 묻혀 멀어져 간다.

PS: 바다가 보고 싶다.

그대만으로 채우고 싶은 지구

Sowelu – No Limit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틀림없이 그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나와 아무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먼 옛날의 일들도 조심스럽게 돌이켜 보면 알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맨발로 구두를 신고 걸은 탓에 발가락 껍질이 조금 벗겨졌는지 아픈 것처럼.

이런 인과 관계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오기도 했고 나를 마음 아프게도 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다.

그대만으로 이 지구를 몽땅 채우고 싶다는 생각만 조용히 방안을 채운다.

다 버리기

대구에 내려가는 그녀를 배웅하고 터미널 옆의 CGV에서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했지만 예매를 하려 늘어선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바뀌어 일찍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의 새 방으로 옮길 책상과 그 위에 달린 책장을 옮겨 놓으셨다. 나는 내가 가져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렇게 예기치 않게 방 정리를 하게 된다. 마지막 정리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것들을 가차없이 버리는 과정은 스스로를 냉정한 자로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모든 생각을 비운 채 분류하고 버리는 일을 계속해 그 끝에 이르는 순간만큼 후련할 때도 없다.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기술 선생은 수업 시간에 I = V / R 이라는, 저항이 작을 수록 흐르는 전류의 양은 더 크다는 기본적인 공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저항이 0이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는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전류에 어떤 일이 생기냐고 다시 물었다. 이렇게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자 결국 그는 학 생들 앞에서 화를 내고 나를 학교 방송실에 데리고 가 혼냈다. 비록 체벌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있 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새로 태어난 느낌일까.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무한대의 전류가 흐르는 일이 없듯 그런 일들은 현실의 나에게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인지 다행스럽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