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어제 말한 대로 조금 열심히 해서 InstallShield 부분을 거의 다 끝냈다. 나머지는 재헌이가 도와줄 부분이라서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혼자서 울티마 온라인도 해 봤다. 며칠 해 보니 각 장소의 위치가 슬슬 머리에 익혀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가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Photoshop Artistry 를 읽다가는 사람들과 MSN 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안 사실인데, 오늘 촬영회가 있었다고 한다. 불러주지도 않고 참… 속상한걸. (확대해석은 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그런 사람들 많지 않은 촬영회도 해 보고 싶고, 사복 촬영도 마음껏 해 보고 싶은데 뭔가 마음대로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나는 내성적이며 정적인 성격이며 그것을 좋아하기도 하는지라, 오히려 그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별로 억울하다거나 부당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월요일엔 냉장고엔 한 통도 남아있지 않은 필름 사러 충무로에 갈 생각이다. Velvia 를 10 통 구입할 것이고, 앞으로는 Velvia 로만 촬영을 하려고 한다. 한 종류의 필름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것을 마음껏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기쁠테니까.

가끔은 먼 곳 어딘가에 살면서 중형 카메라를 하나 들고 원하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완전한 익명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다가는, 또 어딘가로 옮겨가기를 계속하고 싶다. 아무도 나에게 참견하지 않으며, 나도 누구에게도 참견할 필요가 없는 곳. 이건 바보 같은 세상이려나?

생각대로 되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생각대로 행동할 수는 있다. 비록 그 행동의 일련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우리에게는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여러 종류 중 하나를 자유로이 고를수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절대적인 절망상태란 것이 존재하는가? 나의 경험하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생활하는 이 환경에 충분히 나에게 행동의 자유도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인데, 어째서 나는 다른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행동의 자유도에 대한 갈망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이 더 높다. 어떤 심리학적 또는 사회학적 이유를 대어서 그것을 설명할 능력이 나에겐 없다. 결국 나는 완전히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기에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곳을 떠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

아이러니인가?

이 세상이란 곳은 너무나도 완벽하지. 마치 신과 같아서, 아이러니가 있지만 ‘섭리’라는 이름 하에 그것은 어떻게든 설명되고 이해되기를 강요받지. 아니 신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던가.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확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에게 그것이 ‘타인의 결정권(자유)’을 침해하지 못하는 범위로 축소되도록 압력을 가한다. 나와 여러분은 그렇게 길들여져 있고 그러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할 때면 언제나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자연스러운 생의 법칙으로 내 안에 완전히 자리잡을 때 까지 나는 노력하기로 방금 ‘결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