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냐 열중이냐

정체감을 하루에도 여러 번 느낀다. 큰 국면으로 보자면 대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아마 ‘모든 것을 통제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놀거나 일하지 않는 회색 지대는 나를 불안에 빠뜨린다. 스스로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불안하다.

가끔 나는 너무 친절하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남들이 나를 바라보며 간절히 원한다면 어느 새 내 일은 제쳐두고 해결사가 되어 그 순간에 몰두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적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시간에 나 자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안부를 묻는 메신저 메시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질문, 나의 전문 분야와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들을 가끔은 할 일을 제껴두고 열람하고, 또 그에 회신하는 내 모습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친절한 것은 아닌지, 나의 지식과 시간을 너무 쉽게 내어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우습게도 이런 이유들로 내가 느끼는 정체감을 설명할 수는 없는 듯 하다. 그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일종의 병은 아닐까? 물론 그 병 덕택에 그나마 노력하는 내가 있는 것이겠지만,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세상 모든 것에 열중하고 싶다.

6 Comments

  1. pungjoo said,

    October 14, 2005 at 10:22 am

    제가 보기에는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인간적인 맛이 느껴져야지요~..

  2. 골룸 said,

    October 14, 2005 at 4:31 pm

    잘 읽었습니다. 정말 잘 쓴 글입니다.
    자신에 대해 이 정도의 인식이 있고 그걸 글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제 공간에 이 글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3. Trustin Lee said,

    October 15, 2005 at 1:14 am

    네 그렇지요..^^ 그러면서도 한켠으로는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네요.

  4. Trustin Lee said,

    October 15, 2005 at 1:16 am

    글을 님이 칭찬하신 것 만큼 잘 쓸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역시나 마음만 앞서게 되네요. 시간이 흘러 이름만 대도 알만한 사람들의 글처럼 전율을 느낄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5. 아오시마 said,

    December 26, 2005 at 4:54 am

    중 요한건 발란스인데.. 님의 생활에 위와 같은 요소가 전혀 없이 일만 할 수 있는 집중(?)의 시간만이 주어진다면.. 머지않아 쉽게 지치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자극과 동기부여등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니까요. 물론 너무 과중한 시간을 쏟아부어도 안되겠지요. 그 발란스란게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것 같습니다. 모쪼록 행운이 있으시길…

  6. Trustin Lee said,

    January 3, 2006 at 12:38 pm

    균형만큼 중요한 것이 없죠. 어느 한가지를 희생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올해는 더 행복해지고 싶네요. 아오시마님도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